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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촛불문화제 관련 언론 보도를 보면서...

 다른 것보다 눈에 띄었던 것은 중앙 일간지의 침묵과 공중파 방송사의 침묵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오마이뉴스와 아프리카 실시간 방송도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장 쉽게 뉴스를 접할 수 있는 포털사이트에서 이번 촛불시위에 대해서 나름대로 큰건을 터뜨리거나 혹은 빠른 속도로 뉴스를 갱신하는 쪽은 노컷뉴스와 쿠키뉴스(국민일보)였다는 것입니다. 노컷뉴스는 CBS계열의 개신교계 언론사고 국민일보 역시 개신교계 언론사로 유명한 곳입니다. 더구나 이들은 보수 성향, 특히나 국민일보의 경우 보수성향의 언론사란 느낌이 강했습니다만 제가 여태까지의 보도를 지켜보면서 아이러니를 느낍니다.
 어떤 의미로 가장 이명박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를 전하는 곳이 다름아닌 교계입니다. 일반적인 정치적인 성향과 관계 없이 같은 교인이라는 이유로, 거기에 한국 개신교 특유의 이익집단적 양상을 보였던 곳인 만큼 이런 보도 양상은 조금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물론 지면판으로 나오는 데일리 노컷뉴스나 국민일보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지만 나름대로 지면 출간을 하면서 동시에 같은 계열의 온라인 언론사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회사들 중에서는 가장 신속하고 이슈가 될만한 것들을 내보내고 있는 것이 노컷뉴스와 쿠키뉴스입니다. 지난 주 첫 도로 행진이 있었을 때 포털사이트에 비교적 빠른 속도로 뉴스를 업데이트 시켰던 것이 노컷뉴스였고 이번 6월 1일 시위의 사진도 상당량 업데이트 시킨 것도 노컷뉴입니다. 쿠키뉴스는 한 여학생이 전경에 의해 짓밟히는 동영상을 내보내면서 아주 큰 이슈를 불러일으키기도 한 점을 보면 이러한 아이러니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나 하는 의구심까지 들 정도입니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 되고, 그럼에 따라 언론사들의 입장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들이 '그 누군가가 그들을 계속 지켜보고 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by 사혼 | 2008/06/02 18:39 | 창고 | 트랙백 | 덧글(2)

성 베드로의 길을 걷고 있는 이명박 장로님

성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고기낚는 어부가 되지말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라' 라고 말이다

이 말씀에 충실하게 경제라는 떡밥으로 대선때 국민을 낚더니

이젠 쇠고기 개방, 삽질 외교, 각종 공기업 민영화 등으로 사람을 낚는데 재미를 들리신 듯 하다.

ㅅㅂ...................

나도 그럴듯한 제목으로 사람을 낚고 있는건가...




참고로 전 개신교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by 사혼 | 2008/05/27 10:46 | 창고 | 트랙백 | 덧글(2)

여러분 투표는 하셨습니까?

일단 저는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투표소로 갔으니까요.

투표욜이 사상 최악이라는데

"젊은 놈들 밉만 살았어" 라고 욕하셔도 할말이 없습니다.

by 사혼 | 2008/04/09 21:38 | 일상 | 트랙백 | 덧글(1)

어제 Sicko를 보고 왔습니다.

어제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밋코를 관람하고 왔습니다.

뭐 두말할필요 없습니다.

상식에서 벗어난 현실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인식 되는 순간, 현실은 그 어느 것보다 잔인해 지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 말로 모든 것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 안에서 영국의 노동당 의원의 인터뷰가 있는데
국가가 국민을 무지하게 만들고 못살게 만들고 정부를 무서워하게 만드는 것으로
국민을 자신들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게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뷰스앤뉴스]노회찬 후보. 한나라 지지층 까지 흡수" 기사 일부 발췌
소득수준별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진보신당이 자신의 기반으로 지향하고 있는 월 150만원 이하의 최저층에서 홍 후보 41.0%, 노 후보 24.0%로 홍 후보가 앞서고 있을뿐, 그밖의 중-상류층에서는 노 후보가 많게는 두배이상의 차이를 벌이며 홍 후보를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 월 150만-300만은 노 후보 45.3%, 홍 후보 25.5%, 월500만-700만층은 노 후보는 58.1%, 홍 후보는 29.9%, 월 700만원 이상 층에서도 노 후보가 38.5%로14.6%를 얻은 홍 후보를 두배 이상 차로 앞섰다.

라는 기사와 연결해서 보면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식과 정신과 물질의 빈곤은 누가 자신의 편인지도 분간을 못하게 하는 듯 합니다.

by 사혼 | 2008/04/07 21:11 | 일상 | 트랙백 | 덧글(1)

그림자에 하늘이 비치는 사람 - Intro, part 3

Intro, part 3 – 마지막 이별. 그녀의 이야기

 11월의 어느 날. 언제나 그렇듯 자주 만나는 곳 중 하나인 삼청동을 그 사람과 함깨 거닐고 있었다. 그 사람과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걷기만 해도 좋은 곳이어서 난 이 곳을 좋아했다. 그 사람과 만나서 사귄지 얼마나 되었을지 세는 일이 이제는 무감각해질 정도로 오래 전부터 알아왔고 어느 순간 연인이 되었으며 그렇게 서로 아무렇지 않게 지내왔다. 친구들은 매우 쿨한 연인이라고 말을 해주기도 했고 또 어떤 친구들은 사귀는 것 같지 않을 정도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특히 그 사람은 어느 상황에서든 냉정했다. 아니 냉철했다.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았다기 보단 자기 자신을 조절할 줄 알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다정다감했다. ‘은근히’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고 ‘담(澹)이라는 한자가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때론 감정적인 나를 잘 받아줄 줄 알았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그가 헤어지는 말을 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심 불안했던 마음은 언제나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지내면서 이런 날이 언젠가는 오리란 것을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게 현실화 되었을 때, 그리고 평소의 그 사람이 그랬듯이 담담하고 차분하게 이별을 이야기 했을 때 나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그렇게 나는 내 감정을 드러내놓을 수 밖에 없었고 항상 그랬듯 그는 그렇게 받아주었다. 그러던 중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지금의 그를 보았다. 우리의 모습을, 아니 그런 나의 모습을 찍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그가 딱히 미웠던 것은 아니다. 그저 그러고 있는 나의 모습이 싫었다. 그렇게 그 사람에게 투정을 부리듯 행동하는 나의 모습이 싫었다. 그렇게 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 사람에게 하듯이 내 감정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나를 쫓아와 나를 안아주고 여태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눈물을 내게 보였다. 이별. 그래 이별이었다. 그가 아주 조금 흘린 눈물에서 흐르는 별빛은 이 이별의 의미를 알게 해줬다. 그의 슬픔을 이렇게 이해하긴 싫었다. 그래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 그가 좋았던 것이다. 언젠가 부터 우리 둘 사이에 틈을 느꼈음에도 이별 한다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슬펐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내가 처음 본 그의 눈물에서 흐르는 별빛을 본 후 슬프다는 감정조차 들지 않았다. 그렇게 어떻게 표현되지 않고 어떻게 설명되지 않는 이유로 나는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 사람은 아주 짧게 나를 안아주고 일어나 나를 떠났다. 나는 그저 그대로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 내 앞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내게 손수건을 건내 줬다. 고맙다는 말을 해야하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손수건을 받는 것 이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어떤 감정에 속하지 않는 눈물이 계속 흘러나오는 것이 멈출 때까지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진 않았다. 그저 나는 진정 될때 까지 그렇게 있을 뿐이었다. 얼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조금 진정된 나는 서둘러 그 곳을 빠져나갔다. 내가 그의 손수건을 돌려주지 못한 채 서둘러 빠져나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 후에 일이다. 어느 날 문득 내 것이 아닌 물건을 발견 했을 때, 그 날의 기억 때문에 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진 못했다. 아마 그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저 나는 내 가방 깊숙히 그 손수건을 넣어둔 채로 잊기로 했다. 지울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그저 깊은 곳에 묻어두는 것만이 가능한 나의 기억처럼 말이다.

by 사혼 | 2008/03/22 20:20 | 창작 공간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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